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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글쓰기

누가복음 20장19절~40절 ,당신을 속이려는 사람은 칭찬부터 한다

by 91세 방맹이 할머니 2025.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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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의 하단에는 성경 묵상 글쓰기 외에 제가 참고하는 자료들도 편하게 카톡으로 받아보실 수 있는, 실전성경연구 단톡방 / 유튜브 안내가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당신을 속이려는 사람은 칭찬부터 한다

큐티 묵상 매일 성경 글쓰기, 누가복음 20장19절~40절 

금일은 성경 큐티 묵상에서

적을 이기지 않고, 말문을 막게 만든 대답의 기술

대해서 떠올랐습니다.


25/4/8, 826일차, 

[살핌]

누가복음 20장19절~26절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일

누가복음 20장27절~40절 

부활 논쟁


[새김]

※질문은 싸움이었지만, 대답은 침묵이었다

▶사탄은 무례하지 않다, 오히려 예의 바르다

.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은 직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 농부의 비유가,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챈다. 이들은 직접 예수님을 잡을 수 없으니,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다. 

이들은 예수께 충성된 척하는 자들을 보내 질문하는 척하며, 예수님의 말실수를 이끌어 내려고 한다. 그로 인해서 로마 정부에 고발할 빌미를 만들려고 했다. 

이들은 질문에 앞서, 예수님을 칭찬하는 말들을 한다. 이것은 일종의 감언이설로, 예수님의 경계를 풀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간교한 자들은 달콤한 말로, 상대를 현혹시킨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달콤한 말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어서 이들은 이분법적인 양자택일의 질문을 한다. 여기서 세금을 바친다고 하면, 유대인 민족의 배신자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 정부의 반역자로 고발을 당하게 된다. 

즉,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예수님을 곤경에 빠지게 만드는 함정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꿰뚫어 보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에 휘둘리기보다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예수님께서는 질문으로, 그들이 스스로 답을 하도록 유도하신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아주 놀라운 질문을 하신다. 동전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은 누구의 것인가? 즉, 형상적인 질문에 존재론적 질문으로 연결하신 것이다. 

쉽게 말해서 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것은 가이사에게 드리고,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당신 자신은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이분법을 초월해서, 더 깊은 차원의 답을 보여주신다. 

보통 질문을 받으면, 질문 프레임 안에서 대답을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공격이나 방어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초월적인 지혜로, 상대를 침묵하게 만드셨다. 

사탄이 주로 이용하는 전략이 이분법이다. 이를 통해서 분쟁과 갈등을 만들어서, 분열시키려고 한다. 사탄을 침묵하게 만드는 방법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다. 

이어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이 등장한다. 이들의 질문은, 대놓고 부활을 조롱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들의 조롱은, 지식을 포장해서 접근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사탄의 또 다른 전략을 보여준다. 사탄은 예의 바르고 논리적인 모습으로 시험을 한다. 이에 대해서 영적 민감함이 필요하다. 그러면 허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허점은 부활을, 인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적인 관점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탄의 시험에 당하기 쉽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자녀와 하늘의 자녀를 대조해서 설명하신다. 세상의 자녀는 생존을 위해, 결혼, 출산, 가족 구성이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서, 죽음이 있기 때문에 생명 보존을 위한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하늘의 자녀는 결혼과 가족 구성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서, 죽음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신적인 세계에서처럼, 생명 보존을 위한 결혼, 출산, 가족 구성이 필요없다. 

하나님 자녀로 거듭나며 부활한 자들은, 천사처럼 죽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지내게 된다. 

또한 사두개인이 근거로 제시한 모세오경 속에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를 제시하신다. 그것은 바로 모세가 떨기나무 앞에서 만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 표현에서 하나님 자신을 과거형으로 말하지 않으셨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있었던 하나님'이 아니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그들은 지금도 하나님 관계 안에서, 살아있음을 표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고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하나님의 속성은 생명이다. 정 반대의 속성이 바로 죽음이다. 그래서 하나님 곁에는 죽음이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예수님은 논쟁을, 이겼다기보다 끝내셨다. 단순한 논리적인 승리가 아니라, 지혜와 진리 앞에서 모든 반대가 사라진 상태가 된 것이다.

논리는 질문을 계속 만들지만, 진리는 그 자체만으로 질문을 멈추게 만든다. 진리는 논쟁보다 깊은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교묘하면서도 악의적인 질문을 했던 자들은, 오히려 감탄함으로 침묵하게 되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본받아서 배워야 한다. 인간에게 스며든 사탄적인 습성들이 너무나 많다. 서로 말로써 이기려고 하고, 자기가 맞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잠재우는 것은, 이분법을 넘어선 초월적인 지혜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점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배우면서, 닮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시야와 예수님의 관점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우리도 이렇게 사탄의 계략을 잠재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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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름&드림]

초월적인 지성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귀한 말씀으로 깨우침을 전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저 또한 이분법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의 시야와 예수님의 관점을 닮게 하소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배우며, 사탄의 시험을 능가하게 하시옵소서.

지금 우리는, 사탄의 습성에 깊이 빠져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말씀과 예수님 가르침을 깊이 살펴보며, 눈 뜨게 하소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지혜가 가득하길 간절히 바라고 원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충만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누가복음 20장19절~40절 의 매일 묵상 성경 큐티 글쓰기는 개인의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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