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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 멀쩡한 신앙이, 당신을 죽이는 이유
매일 성경 큐티 글쓰기 묵상, 누가복음 19장11절~27절
오늘의 성경 큐티 묵상에서는
왜 하나님은 가진 자에게 더 주시는가?
대한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25/4/5, 823일차,
(살핌)
☞ 누가복음 19장11절~14절
기다림과 반역 사이에서의 선택
☞ 누가복음 19장15절~27절
맡은 사명에 대한 충실함의 평가와 책임

(새김)
●겉보기 멀쩡한 신앙이, 당신을 죽이는 이유
☞왜 하나님은 가진 자에게 더 주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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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유의지로 인해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갇히기 쉽다. 먼저 개인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는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앞서 구원이 오늘 이른다는 말에, 곧 하나님 나라가 당장 나타날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려고 해도, 스스로 거부한다. 진짜 왕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 거부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 나라도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원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곧 자기 우상숭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사실 인간은 진짜 왕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왕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적어도 자기가 왕처럼 살기 위한, 왕을 바라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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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은 인문 과학에서도 드러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감이라는 개념으로 자기 우상숭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탄은 항상 이렇게 고상하고, 멋진 것으로 포장해서 접근한다.
비록 당시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로마로 왕권을 받으러 갔지만, 유대인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항의했던 일이 있었다. 예수님은 이를 비유로 삼아서 말씀하신 것이다.
다만,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유를 드신 것뿐이다. 예수님 말씀에는, 심오한 메시지가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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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떠나기 전에, 종들에게 열므나를 주며 장사하라고 한다. 열므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사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길 원하신다.
여기서 '장사하다'는 말은 투기나 부정한 거래가 아니라, 받은 자산을 운용해서 수익을 창출하라는 뜻이다. 헬라어 원문으로는 “ἐνῆργεῖτε ἐν ᾧ ἔχω ἕως ἔρχομαι”, 즉 “내가 올 때까지 이 돈으로 활발히 일하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제각각,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사명이 있다. 이것을 개발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깨닫고 발견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 발견하더라도, 이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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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돌아와 종들을 불렀을 때, 첫 번째로 나온 종은 자신감과 기쁨으로 자진해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보고할 준비가 되어있는 신실한 신자로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열므나는 수익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대 이상의 충성도를 의미한다.
이렇게 충실한 종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와 감동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첫번째 종의 말을 보면 '주의 한 므나'라고 표현한다. 나의 것이 아닌 주님의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노력과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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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왕은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라고 말한다. 여기서 “잘하였다(Greek: εὖ)”는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훌륭하다’, ‘보기 드물게 충성스럽다’는 강한 찬사이다. 또한 '착한 종'이란 단지 도덕적으로 착하다기보다, 맡은 바를 성실하게 수행한 사람을 의미한다.
더불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라는 부분에선, 작아 보이는 사명일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보신다. 루카노스 전승에 따르면, 작은 계명을 귀하게 여기는 자가 큰 계명을 맡게 된다고 했다.
이어서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는 말은, 단순한 보상을 말하지 않는다. 충성에 따른 위임과 책임의 확장을 의미한다. 이것은 돈을 벌었던 만큼의 보상이 아니라, 통치적 책임과 영적 리더십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보상은 휴식이 아니다. 더 큰 사명의 위임이다. 더불어 하나님의 칭찬은 잠시잠깐의 감정이 아니라, 영원한 신분의 변화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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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종도 자발적으로 주인 앞에 나왔다. 숨거나 도망가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일을 보고하는 것이다. 또한 첫 번째 종처럼, 당신의 한 므나라고 말한다. 이 표현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진짜 충성된 종은 '자기 공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의 성공조차 하나님의 것이라고 진심으로 고백한다.
더불어 열므나를 남긴 종보다 적지만, 비교의식이나 열등감이 없이 담담하게 보고한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양'보다 '마음과 태도'를 보신다. 다섯 므나는 열므나 성취의 절반이 아니다. 충성한 만큼의 열매일 뿐, 하나님은 이에 동일하게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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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세번째 종의 등장은, 조금 다른 표현이 나온다.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라는 표현은, 앞서 두 종이 자신 있게 나온 것과 다르다. 이것은 마치 마지못해 부름에 응하는 듯한 어조로 볼 수 있다.
이 어조를 통해 보자면, 셋째 종은 태도부터 자신감이 없고 무언가 감추려는 기색을 엿볼 수 있다.
'주여 보소서'라는 표현은 '자, 여기 있습니다'라는 식이다. 이것은 아무 일도 안 했으면, 뭔가 내놓은 척하는 말투이다. 첫째, 둘째 종은 '열므나 남겼습니다. 다섯 므나 남겼습니다'라고 말한 것에 비해, 세 번째 종은 '남겼다'는 말 대신 '있다'는 식의 정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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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종은 하나도 잃지 않고, 그대로 보관해 온 것을 자랑하듯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장사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고백이 된다.
이 종은 충성이 아니라, 회피를 선택한 것이다. 두려움, 불신, 게으름 등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무시하고 도망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수건으로 감싸둔 것은, 주님의 은혜를 봉인하고, 멈추고, 썩히며 멈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한다.
이것은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고 멀쩡하며, 남에게 피해를 안 준사람에 대한 경고이다. 즉,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신앙을 유지하면서, 사명을 회피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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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종은 겉으로 보기에 겸손하거나 신중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왜곡과 더불어, 불신, 핑계, 책임 회피가 총집합된 모습이다. 그는 왕의 성품을, 두렵고 무섭게만 인식했다. 그래서 신뢰 대신에 경직된 태도를 보인다.
이런 모습은 종교인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무서운 하나님으로만 알게 되면, 은혜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또한 왕이 두지 않는 것을 취하고, 심지 않는 것을 거둔다는 표현을 한다. 이것은 왕은 가만히 있고 남의 성과만 가져가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불공정하고 가혹한 존재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책임을 외면하기 위한, 영적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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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면, 영적 마비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믿음이 없는 자는, 늘 하나님 탓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명령을 무시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왕은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라고 하신다.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표현이다. 즉, 네가 한 말대로 심판할 거라는 의미다. 랍비 전통에서도 “입에서 나온 말로 스스로 심판받는다”는 개념이 있다. 즉, 종의 핑계는 그 자체로 스스로를 정죄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정말로 두렵고 무서워했다면, 더 열심히 준비하는 게 맞는 말이다. 다시 말해 무서워하면서 아무것도 안 한 것은,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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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종은,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은행에 맡기지 않는 것은, 최소한의 노력도 없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최대한의 노력보다도, 최소한도 살펴보신다.
누가복음 19장 24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빼앗아 (ἀφελεῖτε)”이다. 아무리 은혜로 주어졌다고 해도, 충성 없이 방치되면 회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짜지만, 공짜로만 머물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맡긴 것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숨긴 자”에게 그것을 회수하신다. 즉, 믿음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경고이다. 게다가 가진 자에게 더 주는 이유는, 그만큼 책임과 신뢰로 인한, 사명의 위임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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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누가복음 19장 25절에서 처럼,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해석으로 현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열므나를 가진 자에게 주는 것을, 마치 탐욕의 보상처럼 해석한 것이다.
인간은 '없는 자'를 측은히 여기지만, 하나님은 '충성된 자'를 세우신다. 하나님의 기준은 감정이 아니라, 책임감과 신뢰성이다. 인간은 평등한 골고루를 집착하지만, 하나님은 책임을 감당할 그릇에 더 많이 주신다.
하나님 나라의 자산은, 멈춰있는 사람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람에게 전해진다. 이것은 은혜, 기회, 사명 모두에 드러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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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 자체가 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것까지 뺏기게 되는 것이다.
은혜는 쌓이는 것이 아니라, 흘러야 하는 것이다. 사용될 때만 살게 되고, 멈추면 썩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는, 사명이 중심이 되는 나라이다. 충성된 자에게 더 맡기고, 게으른 자에게는 은혜조차 회수하신다. 이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신뢰의 원칙이다.
오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깊이 새기지 못하면, 결국 공정한 심판대 위에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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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름&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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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자비가 많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으로 깨닫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저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제 기준과 욕심으로 남용했었습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사, 용서해 주시옵소서.
진심으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충실하게 사용하게 이끌어 주소서.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도와주소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과 의를 깊이 알아볼 수 있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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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11절~27절 의 매일 성경 큐티 글쓰기 묵상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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