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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글쓰기

여호수아 20장1절~9절, 피로 죄를 대속한다는 숭배사상

by 91세 방맹이 할머니 2025.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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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죄를 대속한다는 숭배사상

매일 성경 큐티 글쓰기 묵상, 여호수아 20장1절~9절

오늘의 성경 큐티 묵상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 사랑의 비밀

대한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25/1/30, 758일차, 

(살핌)

여호수아 20장1절~6절

도피성 설정

여호수아 20장7절~9절

여섯 도피성 

 


(새김)

● 피로 죄를 대속한다는 숭배사상

☞ 하나님과 예수님 사랑의 비밀

.

도피성 제도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자는, 억울하게 복수를 당하기 쉽다. 이를 구해주시기 위해서, 도피성 제도가 설립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만약 고의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자는 죄를 지은 것이 맞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실수로 저지른 살인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자를 죽이는 것은, 거꾸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자의 생명을 보호하시기보다, 억울하게 죄를 짓지 않게 피해자의 가족들을 지켜주시기 위해 도피성제도를 만들어주신 것이다. 

육신적인 생명 보호보다, 영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 더 큰 일이다. 왜냐하면 죄 없이 죽으면 그래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 하지만 죄를 짓게 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된다. 

게다가 죄가 없는 자를 살인한 것은, 큰 죄가 된다. 이런 죄를 짓는 것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죽음 이후로 실수로 저지른 살인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도, 사실 피해자의 가족들을 위한 것이다. 대제사장의 죽음으로서, 그들의 복수심과 분노가 상쇄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피해자의 가족들은, 복수를 저지를 마음이 사라지면서 죄를 지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과 육신적인 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런 의지와 노력도, 하나님께 가까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지려면, 그의 뜻과 의를 구해야 가능하다. 그래서 말씀을 더욱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육신적인 관점보다,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관점에서 말씀을 바라볼 수 있다.

기독교의 오랜 전통에 의하면, 피가 죄를 대속한다는 믿음이 있다. 이것은 마치 희생과 더불어 신비로운 해석을 더한다. 죽음과 피는 육신적인 인간에게, 경각심을 주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인류 역사의 발전은, 숭고한 죽음의 도움을 받는다. 

피가 죄를 대속한다는 것은, 원시 종교에서 비롯된 문화 의식이다. 처음에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원시 신앙이 있었다. 여기서 인간을 동물로 대체하는 모세의 가르침이, 종교 개혁과도 같은 발전이었다.

당시 동물로 제사를 지내면서, 육신적인 인간에게 강력한 자극으로서 교육 효과가 있었다. 끔찍한 광경과 피를 보면서, 더 이상 죄를 짓고 싶지 않을 정도의 마음을 들게 했다. 그래서 같은 죄는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제사가 형식적으로 전락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반성과 회개가 없는 제사를 싫어하셨다. 

예수님의 숭고한 죽음은, 우리에게 아주 큰 깨달음과 경각심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신 사건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정신과 실천을 보고 깨닫고 배워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 편의상 신비주의적인 해석의 숭배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은 어리섞은 자들에게, 끝까지 사랑의 모습을 실현하셨다. 그들을 다그치더라도, 전적으로 그들을 위한 진실한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셨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모진 핍박을 하더라도, 어리섞은 자들을 연민으로 바라보셨다.

그러면서 그 어떤 저항과 반항도 없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활보다도 엄청난 고통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셨다는 사실이다. 

그 어떤 존재가,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타인을 연민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숙고하며 묵상하고, 조금이라도 배우고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고통을 겪으신 것에 대한,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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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름&드림)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귀한 말씀으로, 새로운 가르침을 전해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한없이 부족한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의 길을 향하게 하소서.

저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살펴봐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인간의 생각 수준으로, 하나님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의 뜻과 의를 구하기 위해 힘쓰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기를 노력하게 하소서.

나의 고통에 대해서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게 하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유튜브 검색 '방맹이할머니의 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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