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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몰라도 천국 가는 이유
매일 큐티 성경 묵상 글쓰기, 누가복음 9장37절~50절
금일 성경 큐티 묵상에서는
전혀 다른 사건들의 일관된 교훈에
대해서 떠올랐습니다.
25/3/8, 795일차,
[살핌]
◆ 누가복음 9장37절~43절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다
◆ 누가복음 9장44절~50절
제자들의 교훈과 교만에 대한 경고
[새김]
●교회를 몰라도 천국 가는 이유
☞전혀 다른 사건들의 일관된 교훈
.
왜 하필 산에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시고 내려오자마자, 귀신 들린 아이가 나타났을까?
이것은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즉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 없음과 영적 무능함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또한 하늘의 영광과 땅의 고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기도 하다. 단순히 하나님의 영광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죄 많고 고통스러운 세상으로 내려와 그들을 구원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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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자들은 하나님 영광을 체험했는데도, 왜 믿음이 부족했을까?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나타나는 모습이면서 교훈을 전해준다. 인간은 한번 기적을 체험하면, 그것을 전부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즉 꾸준한 노력을 하기보다, 인간적인 습성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현실의 삶 속에서, 꾸준한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로 인해서, 영적 성장을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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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인기는 절정에 있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이야기하신다.
이 당시에 군중들은 예수님의 기적에 감탄하고, 예수님의 능력이 곧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의미한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기대를 정면으로 반박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난을 위해 왔음을 선언하신다.
이는 메시아에 대한 인간적인 기대와 하나님의 계획 사이의 충돌을 보여준다.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역사의 패턴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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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필연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메시아의 길이 권력과 영광이 아니라, 희생과 섬김의 길임을 강조하는 메시지이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은,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진리였다. 그만큼 이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시점까지 점진적으로 드러나야 했다. 그래서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감추어졌을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발견할 수 있는 교훈은, 영적 겸손함이다. 인간은 인기의 절정에 다다르면, 교만함을 보이기 쉽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적 겸손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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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이어지는 말씀에서 겸손의 가르침을 주신다. 제자들은 서로가 높아지기 위해서 변론한다. 이 자체가 전형적인 교만의 모습이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크고 작음의 기준이 눈으로 보이는 권력이나 지위가 아니라, 겸손과 섬김이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당시 어린아이는 순수함을 상징하면서도, 사회적으로 낮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낮은 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조화와 균형의 법칙의 가르침으로도 볼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가장 낮아진 자는, 하늘에서 높아지는 것이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높아지려고 하는 자일수록, 하늘에서 낮은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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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이어서 그들의 교만이 배타적인 모습으로도 드러난다. 곧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가, 예수님 능력을 행하는 것을 막은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말씀을 향하는 사람은, 꼭 예수님을 따르지 않더라도 오히려 너희를 위하는 자라고 하신다.
이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서, 본질을 꿰뚫는 말씀이시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는, 신학대를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 중에 (그들의 얘기로는) 2명이 신학대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신학대를 나오지 않았고, 목사가 아니라서 목사보다 덜 신뢰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서 이런 묵상 글쓰기를 나누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그들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 집단 교만에 따른 배타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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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사님은 목사들도 매일 하기 어려운 것을, 실천한다는 응원의 말씀도 주셨다. 이 말씀의 이면에는 직업적인 목사들을 암시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는 모두 같은 편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지금의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즉 본질은 눈에 보이는 율법적인 형식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정신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해있느냐 이다. 주일에만 경건한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따르려는 노력을 하는 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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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많은 교회들이, 시대를 거쳐오면서 기독교적 율법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예전 가톨릭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이 나타났었다. 게다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의 습성과 본능이 아닌가 싶다.
오늘 말씀도 전혀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결국 일관된 메시지와 개연성을 보여주고 계시다. 이런 가르침을 발견하면, 너무나 흥미로우면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우리는 지극한 겸손을 훈련해야, 본질적인 하나님 말씀의 길이 보인다. 또한 배타적이기보다, 예수님을 모르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자들을 알아볼 수 있고 함께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하나님 예수님 가르침을 받으면, 더욱더 정확하고 쉽게 하나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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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름&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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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하나님의 길로 인도해 주심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귀한 말씀으로 깨닫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저 또한 영적 교만으로 배척하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사, 온전한 낮아짐과 겸손으로 이끄소서.
우리가 인간적 습성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과 예수님 가르침의 본질에 눈 뜨게 하소서.
더욱더 낮아짐으로 인해서, 우리 모두가 하늘에서 높아지길 바랍니다.
지금도 높아지려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불쌍히 여기사, 깨우치고 낮아지게 하소서.
이 세상에 하나님 말씀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유튜브 검색 '방맹이할머니의 성경공부'
누가복음 9장37절~50절 의 매일 큐티 성경 묵상 글쓰기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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