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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을 바라고 하나님을 따르는, 무지함
매일 큐티 성경 묵상 글쓰기, 누가복음 9장51절~62절
오늘의 성경 큐티 묵상에서는
예수님은 뭐라고 꾸짖으셨을까?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25/3/9, 796일차, 누가복음 9장51절~62절
[살핌]
★ 누가복음 9장51절~56절
사마리아의 마을에서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다
★ 누가복음 9장57절~62절
나를 따르라
[새김]
●예수님은 뭐라고 꾸짖으셨을까?
▶안정을 바라고 하나님을 따르는, 무지함
.
예수님께서는 굳게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여기서의 '굳은 결심'은 죽음을 향한 결단이다. 이것은 인간적인 두려움을 초월한 신적 순종을 보여준다. 더불어 단순한 여행이 아닌, 의도된 희생을 향한 행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행보를 사마리아인이 거부했다. 이 대목에서 여러 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과 뿌리는 같지만, 바벨론 포로 이후 분리되면서 신앙적 차이가 생겼다.
특히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유일한 예배장소라고 믿었지만,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것은, 사마리아인들의 신앙을 부정하는 행위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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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할 때, 가장 빠른 경로는 사마리아이다.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이 이런 유대 순례자들을 방해하거나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유대인들은 요단강 동쪽을 멀리 돌아가기도 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의 행보를 배척했던 것이다. 이것은 곧 예수님의 사명을 방해하는 형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을 따르는 데 있어서, 평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탄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사명을 따르는 데 있어서, 방해와 공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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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놀라운 행보를 보여주셨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부정적인 사마리아인들을, 정죄하거나 차별하지 않으셨다. 즉 종교적 편견을 초월하시고, 본질의 중요성을 알려주셨다.
여기서 본질이란, 예배를 드리는 장소보다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예루살렘이든 그리심산이든, 장소가 중요하기보다 하나님을 향한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질을 추구하시다 보니, 종교적 편견을 초월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하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그렇지 못한 모습이 바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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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불로서 그들을 멸하자고 한다. 이는 구약에서 엘리야가 불을 내려 하나님의 심판을 내린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왕하 1:10~12) 하지만 이것은 철저히 인간적 본능에 의한 복수심으로 나오는 반응이다.
엘리야 불의 사건과는 견줄 수가 없는 영적 수준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신 것은, 인간적인 복수심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심오한 메시지와 교훈이 있다.
C.S. 루이스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수를 요청할 때, 그분은 우리에게 ‘나는 너희를 위해 복수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실 것이다.”라고 했다. 즉, 하나님을 믿는 자는 복수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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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님께서 꾸짖으셨다고 한다. 누가복음 9:55-56의 일부 사본에는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해진다.
"너희는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인자는 사람들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느니라." 즉, 제자들의 영적 수준이 하나님의 수준이 아닌, 육적인 수준에 사로잡혀 있음을 꾸짖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불'로써 멸망시키시기보다, '성령의 불'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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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는 어떤 자세와 태도로 하나님을 따라야 하는가? 이에 대해 누가복음 9장 57~62절에서 말씀을 주신다. 먼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물질적인 안락함과 거리가 멀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세상의 안정과 부를 쌓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세상의 일은 세상적 가치에 얽매인 사람들에게 맡기라고 하신다. 특히 누가복음 9장 60절에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라는 부분에서, 처음에 나온 죽은 자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즉,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 사명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쟁기의 비유가 나온다. 농부가 쟁기를 잡고 밭을 갈 때, 뒤를 돌아보면 고랑이 삐뚤어진다. 이처럼 하나님을 따르려면 과거의 삶에 미련을 두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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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를 따르는 것은 과거의 삶과 단절하는 것이다. 미련을 버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C.S. 루이스“신앙이란 편안한 것이 아니다. 신앙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다.”라고도 했다.
정리하자면 희생과 헌신, 신앙의 최우선 순위, 결단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다. 심지어 가족과 신앙의 갈등에서도,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분법적으로 가족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기 위해서, 지혜를 구하며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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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종교적 편견이 없으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마리아인들의 종교적 편견으로 예수님을 놓치게 되었다. 사실 유대인도 마찬가지의 종교적 편견이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인 것처럼, 지금도 우리들에게 종교적 편견이 작용한다. 심지어 같은 교단인데도, 편견이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열심히 교회를 다니더라도, 편견으로 인해 예수님의 가르침과 진리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나왔듯이, 우리는 물질적 안정, 가족, 사회적 인정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자세가 있어야, 편견을 넘어선 행동을 실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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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름&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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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귀한 말씀을 살펴보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저 또한 물질적 안정, 가족, 사회적 인정을 우선하며 지내온 적이 많습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 말씀을 최우선으로 따르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눈에 보이는 세속적인 가치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삶이 진정한 행복과 기쁨임을 알게 하소서.
육신적 본능에 갇혀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하늘의 영적 수준까지 성장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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