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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글쓰기

누가복음 16장14절~31절,당신 앞에 예수님이 와도 못 알아보는 이유

by 91세 방맹이 할머니 2025.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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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 예수님이 와도 못 알아보는 이유

큐티 묵상 매일 성경 글쓰기, 누가복음 16장14절~31절

금일은 성경 큐티 묵상에서

당신은 돈을 쓰는가, 아니면 돈에게 쓰이고 있는가?

대해서 떠올랐습니다.


25/3/28, 815일차,  

[살핌]

누가복음 16장14절~18절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 질서

누가복음 16장19절~31절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새김]

※ 당신은 돈을 쓰는가, 아니면 돈에게 쓰이고 있는가?

▶당신 앞에 예수님이 와도 못 알아보는 이유

.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수 없다는 말씀을 듣고 비웃었다. 왜냐하면 돈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로 여겼다. 더불어 의로운 삶의 결과라고도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대해, 예수님께서 돈이 신앙을 망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생각이 부정당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바리새인들은 돈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면서, 세속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 정당하게 여겼다. 예수님은 이것을 꿰뚫어 보시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돈 자체를 부정하신 것이 아니다. 본질은 이것을 어떤 마음 자세로, 대하고 다루는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직설적으로 말씀하신다. 그것이 바로 결혼과 이혼, 간음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혼에 대한 율법을, 유리하게 해석해서 이용했었다. 그래서 이혼 증서만 주면 이혼해도 된다는 관행으로,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는 경우가 쉬웠다. 이것은 이혼을 나쁘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혼의 사례를 들어, 율법을 자기 이익에 맞춰서 이용하는 문제를 지적하신 것이다. 

이어서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이후로는 하나님 말씀에 침입한다고 하신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자동적으로 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깨 주신다. 

누구라도 진지하고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혈통이나 종교적 권위, 그냥 기계적인 종교 생활을 잘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우리도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종교생활을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 같은 말들을 한다. 바로 먹고살기 바쁘고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갇혀있다. 

그렇다고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하면서도, 항상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따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혹자는 여기서, 사회 환경이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한다. 

이 말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말이 된다. 작은 양보와 배려, 희생을 조금이라도 실천해 볼 생각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침입한다는 말씀에 이어서, 율법의 한 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것은 새로운 하나님 말씀의 시대가 열렸어도, 하나님 말씀에 의한 율법은 절대적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바로 이어서, 이혼과 간음 이야기가 나온다.

율법이야기를 하다가, 왜 이혼과 간음 이야기를 하셨을까? 이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적나라한 부분을 지적하기 위함이시다. 정작 율법을 중요시 여기는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을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과거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식으로만 생각할게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성경 말씀을 읽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모든 말씀은 나를 향해있고, 나를 돌아봐야 한다. 사실 현대 기독교인들도 과거 유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어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거지의 이름이 언급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개인적으로 기억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반면에 부자는 이름이 없이 단순히 '부자'로만 언급된다. 이것은 세상에서 부와 명예, 지위가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나사로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이름을 사용하신 이유는, 사회적으로 철저히 무력한 자가 하나님의 보호와 위로를 받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거지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었다. 이것은 부자가 타인의 배고픔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을 보여준다. 반면에 당시 유대 사회에서 부정한 동물이었던 개마저도, 상처를 핥는 연민을 보이며 자비로운 동물로 나온다.

이것은 거지의 극도로 불쌍한 모습과 반대로 사회적 약자에 무관심한 부자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부자가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가난한 자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가, 그의 죄가 되었던 것이다.

부자는 지옥에 가서, 물 한 방울을 구걸할 정도로 극도의 고통을 겪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족에라도, 이 사실을 알려달라고 외친다. 하지만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주신다.

아브라함과 모세의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일지라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모세의 선지자들 말을 잘 듣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정작 껍데기만 이용할 뿐이고, 말씀의 본질은 전혀 지키지 않았다. 

이것은 현대 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예수님 말씀을 잘 지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정작 본질적인 것들을 하나도 실천하지 않고 있다. 만약 이런 기독교인들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신다고 해도 못 알아볼 것이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비단 어떤 대상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신실한 척하면서, 본질을 무시하는 자들을 향한 말씀이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와 실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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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름&드림]

자비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귀한 말씀으로 돌아보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저 또한 하나님 말씀과 예수님 가르침을 깊이 따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불쌍하고 나약한 자들을 적극적으로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사,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게 하소서.

우리가 세속적인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꼭 천국 가는 것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살필 수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고 기쁜 것임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누가복음 16장14절~31절의 매일 묵상 성경 큐티 글쓰기는 개인의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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